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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 심장마비로 사망

Moobee79 2020. 11. 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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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신동디에고 마라도나, 심장마비로 사망

안녕하세요? Moobee 입니다. 오늘은 축구 신동디에고 마라도나, 심장마비로 사망 소식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이 펠레 ‘황제’라 부른다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사나이를 ‘신’으로 추앙합니다. 실제로 지구상에는 그를 숭배하는 ‘종교’까지 존재할 정도인데요. 월드컵 전체를 혼자서 좌지우지했던 사나이,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이 골과 가장 멋진 골을 불과 사이에 터뜨렸던 사나이, 왼발 하나로써 세계를 정복했던 그라운드의 마술사, 그러나 무절제와 기행, 트러블을 끊임없이 달고 다닌 악동, 그가 바로 디에고 마라도나 입니다.  

 

 

청소년 선수권의 전설

  

마라도나의 프로 경력은 15세이던 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시작됐는데요. 그는 이듬해 성인 국가대표로 데뷔, 일찌감치 재능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아르헨티나가 최초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1979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는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가 월드컵 같은 대회의 압박감을 견뎌내기엔 마라도나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판단했던 까닭인데요.

그러나 1979년이야말로 다가올 영웅의 시대를 예고했던 해이기도 했는데,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지금의 20 이하 월드컵(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6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던 까닭입니다. 소련을 상대로 결승전에서의 맹활약을 비롯, 대회 6골을 터뜨렸던 마라도나는 당시를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우승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를 20 이하 월드컵의 최강국(최다 6 우승)으로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련의 스페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의 4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마라도나는 명문 보카 주니어스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데요. 1981 2 22 데뷔전에서부터 골을 터뜨린 마라도나는 시즌 보카에서 자신의 클럽 축구 우승의 기쁨을 맛볼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유럽 클럽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었고 결국 1982 6 4 세계 이적료 신기록으로써 카탈루냐 거함 바르셀로나행을 확정짓습니다. 그리고 바로 스페인 땅에서 마라도나를 기다리고 있던 번째 이벤트는 다름 아닌 1972 스페인 월드컵이었는데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세계가 주목했던 젊은 천재의 월드컵은 시련과 좌절로 점철되고 맙니다. 마라도나는 경기 벨기에 전부터 상대 선수들의 집중 견제와 거친 파울들에 크게 시달렸습니다. 아르헨티나 팬들, 카탈루냐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경기의 주인공은 마라도나가 아닌 벨기에의 에르빈 반덴버그였습니다.

 

 

마라도나는 번째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골을 터뜨렸지만 천재성의 발휘도 거기까지. 2 조별리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클라우디오 젠틸레의 마크에 충분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팀의 운명이 걸린 브라질 전에서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경기 막판 노골적인 악성 파울을 저질러 퇴장을 당하기까지 했는데요.

 

성숙한 마라도나에다 마리오 켐페스, 오시 아르딜레스의 경기력이 4 전과는 거리가 있었던 아르헨티나는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웅이 이끄는 능수능란한 브라질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수성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마라도나에 대한 세계의 평가 역시 ‘아직은 미완성’ 정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드컵 실패에 이어 시작된 그의 바르셀로나 커리어 또한 순탄치 않았는데요.  그는 시즌 간염으로 고생했고 이후에는 심각한 부상에 직면했다. 1983 9 23 어슬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빌바오의 도살자’로 불렸던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의 백태클에 왼쪽 발목 골절상을 입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선수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있는 것이었는데요.

 

 

부상을 털고 일어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의 다른 문제는 대중적 평판이었습니다. 완벽한 컨트롤 능력을 보유한 마라도나였지만 갑자기 찾아온 부와 유명세, 그리고 유럽에서의 삶을 적절히 컨트롤하는 능력은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상 마라도나가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곳도 스페인이었고, 언론과 팬들은 그를 말썽꾼으로 규정하며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라도나의 바르셀로나 커리어는 모든 대회 도합 38골의 기록(출전 횟수에 비해서는 분명 좋은 기록) 남긴 시즌 만에 끝이 났습니다. 바르셀로나 선수 마라도나가 남긴 최후의 명장면(?) 1984 5 빌바오와의 코파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집단 난투극의 주역으로 무릎차기와 발차기를 날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설의 시대

 

1984 6 30, 마라도나는 다시 세계 이적료 신기록을 수립하며 이탈리아 클럽 나폴리로 이적합니다. 나폴리가 이전까지 차례의 리그 우승도 차지하지 못한 데다 직전 시즌 11위에 머물렀던 클럽이기에 이적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었는데요.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불세출의 재능 마라도나의 위대한 황금기를 활짝 열어젖힌 출발점이자 나폴리의 역사에 있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이 되었습니다. 마라도나의 시즌 나폴리는 8위로 상승했으며, 다음 시즌에는 3위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이는 위대한 역사의 서곡에 불과했는데요.

 

마침내 1986 멕시코 월드컵이 개막했다. 어쩌면 월드컵은 장구한 월드컵의 역사에서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대회였는지도 모릅니다. 마라도나 사람의 존재가 그것을 가능케 했는데요.

 

 

펠레와 가린샤, 바비찰튼과 에우제비우, 요한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를 비롯한 영웅과 거목들을 탄생시킨 월드컵이었지만 명의 선수가 하나의 월드컵 전체와 맞먹었던 대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1986 월드컵 자체였습니다.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미셸 플라티니, 지쿠, 엔조 프란세스콜리, 미카엘 라우드럽, 하인츠 루메니게 등과의 경쟁에서 의심의 여지없는 승자가 되었고, 그것은 당대의 천하통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1986 월드컵 일곱 경기에서 다섯 골을 터뜨렸는데, 가운데 적어도 골은 축구가 지속되는 영원히 기억될 장면들입니다. ‘그라운드 위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불린 준준결승 잉글랜드 전에서 마라도나는 악명 높은 ‘신의 손’의 골을 터뜨려 잉글랜드를 분노케 했지만 격정적인 잉글랜드 팬들조차 터져 나온 마라도나의 ‘신의 발’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진영에서부터 시작된 마라도나의 신기는 잉글랜드의 피터 비어슬리, 피터 리드, 테리 부처, 테리 펜위크, 피터 쉴턴, 게리 스티븐스를 차례로 무찌르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창조해냈는데요.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는 명의 축구 선수가 경기에서 행사할 있는 극한의 영향력을 보여준 실로 역사적인 명승부였습니다.

 

마라도나의 마술은 벨기에와의 준결승에서도 계속됐는데, 특히 명의 벨기에 수비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번째 골은 잉글랜드 장거리 드리블에 버금가는 명작이었습니다.

 

 

 

마라도나의 영광은 1986 월드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7 5 10, 마라도나의 나폴리는 마침내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나폴리에서도 ‘신’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나폴리와 계약을 연장한 마라도나는 1989 팀을 UEFA 정상으로 인도했으며 이듬해에는 유럽챔피언 AC 밀란 따돌리고 다시  세리에 왕좌를 차지합니다. 당시의 이탈리아 세리에A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운집한 최고의 리그였음을 고려하면 마라도나와 나폴리가 이룩한 업적의 크기를 짐작할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아르헨티나의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60) 25(현지 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요. CNN ESPN 외신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 협회는 우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죽음에 깊은 고통을 느낀다”며 “마라도나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라도나의 에이전트와 대변인 주변 지인들도 외신들에 그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건강이상으로 자주 병원신세를 마라도나는 60 생일 직후인 이달 초에도 우울증과 빈혈, 탈수 증세로 입원한 있는데요. 당시 의사는 마라도나가 경막밑혈종을 앓고 있으며 수술을 것이라고 밝힌 있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최정상의 축구 실력과 달리 여러 가지 기행과 마약 복용, 알코올 중독 사생활로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는데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3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트위터에 “당신은 우리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했고 우리를 엄청나게 행복하게 해줬다”며 “우리는 당신을 계속 그리워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펠레도 마라도나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언젠가 우리는 하늘에서도 공을 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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